한국에 처음 인터넷이, 즉 TCP/IP 네트워크가 구성된 것이 1982년입니다.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1994년입니다. 인터넷이 실험적으로 도입된 지 30년, 상용 서비스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느덧 정보통신 기기와 인터넷은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사회는 국가 주도, 산업 중심의 정보화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초고속 인터넷 망의 급속한 도입으로 소위 인터넷 강국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정보통신/인터넷 정책은 국가권력의 통제 욕구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어 왔습니다. 소위 ‘갈라파고스’ 정책이라고 비판받는 한국의 정보통신 정책은 그 폐쇄성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가 빈곤하고 정책 수립의 과정이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여느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인터넷 정책 역시 공공성과 인권에 기반하고,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수립되어야 합니다.
국가와 산업 중심의 정보화 과정에서, 이를 견제할 정보통신/정보인권 운동도 자연스럽게 성장해 왔습니다. 90년대 중반의 통신 검열 반대 운동과 전자주민카드 반대 운동으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 옹호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운동을 계기로 ‘정보인권’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정보인권 운동은 전자주민카드 도입 저지, 인터넷 내용등급제 저지, 불온통신 규정 위헌결정,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설립 등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새로운 서비스의 도입, 이에 따른 사회 관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도전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 어떠한 함의를 갖고 있는지, 변화한 환경 속에서 공공성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제도가 필요한지,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거버넌스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보통신/인터넷 정책 수립을 위한 핵심적 가치는 ‘인권’입니다. 국제연합(UN)에서도 오프라인에서의 인권이 온라인에서도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함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지난 2014년 4월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던 ‘인터넷거버넌스의 미래를 위한 멀티스테이크홀더 세계회의’에서도 인권에 기반한 인터넷 거버넌스를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한 바 있습니다.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 정보문화향유권, 정보접근권, 망중립성 보호를 통한 자유롭고 동등한 인터넷, 민주적인 인터넷거버넌스의 가치를 지지합니다. 또한, 기존의 인권적 가치들이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보호받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맞게 그 내용이 확장, 심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정보인권 운동은 현안에 대한 대응과 연구를 힘겹게 병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안의 대응과 정책 연구는 호흡을 달리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정책 연구는 현실의 운동과 긴밀히 상호 작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정보인권연구소는 현실 운동과의 긴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변화를 분석하고 대안을 연구함으로써, 정보인권 운동에 자양분을 공급할 것입니다.